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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과 정복 — 우리는 왜 싸워야 할 때 서로를 향해 싸우나 — 역사는 반복된다 4부 (완결)

🧪 짠테크 인사이트

by 짠테크연구소 2026. 4. 27.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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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부터 3부까지 봐왔다.

공유지를 빼앗긴 사람들.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 저항하면 교수대에 오른 사람들. 구빈법이라는 최소한의 안전판. 그리고 AI 시대에 다시 펼쳐지는 같은 구조.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왜 그때 사람들은, 그리고 지금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할 때 서로를 향해 싸우는가.

이게 4부의 주제다.

 

① 19세기 영국 공장의 실험

1810년대 영국 섬유 공장.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공장에 들어왔다. 임금이 낮았다. 영어가 서툴렀다. 가톨릭을 믿었다. 영국 노동자들은 이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저 아일랜드 놈들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다."

공장주들은 이 갈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영국인 노동자가 파업을 요구할 때 아일랜드인을 투입했다. 아일랜드인이 임금을 올려달라고 하면 영국인을 투입했다. 둘이 서로 미워하는 동안 임금은 내려갔다.

종교도 활용됐다. 개신교 노동자와 가톨릭 노동자를 다른 동네, 다른 구역에 배치했다. 교회가 다르면 술집도 달랐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 연대는 불가능했다.

숙련공과 미숙련 노동자 사이도 마찬가지였다. 기계가 들어오기 전, 숙련 직조공들은 미숙련 노동자들을 내려다봤다. "우리는 기술자다. 저들은 단순 노동자다." 그 우월감이 연대를 막았다. 기계가 들어왔을 때 숙련공들은 미숙련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는 대신 자기 기술을 지키려 했다. 결국 기계는 둘 다 대체했다.

공장주들이 특별히 영리해서가 아니었다. 인간의 본성을 이용한 것이다. 불안할 때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에게 붙고, 다른 사람을 위협으로 인식한다. 그 심리를 이용하면 공동의 적을 향한 분노가 서로를 향한 분노로 바뀐다.

 

② 분열과 정복의 원리

이것은 전략이다. 로마 제국이 썼고, 식민지 지배자들이 썼고, 지금도 쓰인다.

원리는 단순하다. 다수가 단결하면 소수의 권력은 위협받는다. 그래서 다수를 분열시킨다. 집단 A와 집단 B가 서로 싸우게 만들면 C(권력)는 안전하다.

효과적인 분열 도구들이 있다. 인종, 종교, 성별, 세대, 출신 지역. 이것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차이다.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저 아일랜드인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말은 완전히 거짓이 아니다. 공장주가 아일랜드인을 더 싸게 썼으니까. 그러나 그 분노가 공장주가 아닌 아일랜드인을 향하도록 유도한다.

한 가지 테스트가 있다. 어떤 갈등이 불타오를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된다. 이 갈등이 격화될 때 누가 이익을 보는가.

 

③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

 

 

2026년 한국. 어떤 갈등이 가장 뜨거운가.

남성 대 여성. 2030세대 대 5060세대. 정규직 대 비정규직. 수도권 대 지방. 기술직 대 서비스직.

이 갈등들은 모두 실재한다. 진짜 불평등이 있고, 진짜 차별이 있고, 진짜 피해가 있다.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 갈등들이 폭발하는 타이밍이다.

AI가 콜센터 상담원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분노가 어디로 향했는가. AI 기업을 향했는가. 그 AI로 수익을 올린 대기업을 향했는가. 아니면 "저 여성들이 채용 쿼터로 자리를 차지했다"는 이야기로 흘렀는가.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임금 격차가 커졌다. 그 분노가 구조적 문제를 향했는가. 아니면 "정규직들이 기득권을 지킨다"는 정규직-비정규직 갈등으로 번졌는가.

2015년, 한 연구자는 그해 "세대 간 불평등·불공정 프레임이 폭증"했다고 분석했다. 그 해는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던 시기였다. 청년 실업의 원인을 기성세대 기득권으로 프레이밍하면 노동시장 구조 자체에 대한 비판이 세대 갈등으로 희석된다.

이게 우연인가 아닌가는 각자 판단할 문제다. 그러나 구조는 명확하다. 갈등이 커질수록 정작 누구에게 유리한지를 묻는 질문은 묻힌다.

 

④ AI 시대에 분열은 더 정교해진다

인클로저 시대에는 분열 도구가 투박했다. 인종, 종교, 지역. 눈에 보이는 차이를 이용했다.

지금은 알고리즘이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내가 어떤 영상을 오래 보는지, 어떤 댓글에 반응하는지를 학습해서 비슷한 콘텐츠를 계속 보여준다. 세계관이 같은 사람들끼리 묶인다. 다른 세계관은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적으로 보인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하나 있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사람들의 불안이 커진다. 불안이 커질수록 적을 찾는 심리가 강해진다. 알고리즘은 그 심리를 이용해 클릭을 유도한다. 클릭이 늘수록 플랫폼의 광고 수익이 늘어난다.

AI 시대의 공포가 AI 플랫폼의 수익이 되는 구조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빼앗는 AI에 분노하는 대신 플랫폼이 보여주는 '적'에게 분노한다. 그 적은 오늘은 여성일 수 있고, 내일은 이민자일 수 있고, 모레는 50대일 수 있다.

19세기 공장주들이 아일랜드인을 활용한 것과 구조가 정확히 같다.

 

⑤ 그렇다고 갈등 자체를 부정하면 안 된다

여기서 오해를 피해야 한다.

세대 갈등, 젠더 갈등, 지역 갈등을 "분열 전략에 이용당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그 갈등 속의 진짜 피해를 무시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여성 차별은 실재한다. 세대 간 불평등은 실재한다.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는 실재한다. 이것들은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다.

핵심은 이것이다. 그 진짜 문제들이 서로를 향한 분노로 해소될 때 가장 이득을 보는 자는 그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구조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19세기 공장주들이 영국인과 아일랜드인의 갈등을 이용했을 때, 두 집단 모두 실제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열악함은 진짜였다. 그러나 그 분노가 서로를 향하는 한 공장주는 아무것도 바꿀 필요가 없었다.

갈등의 대상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갈등의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⑥ 이 시리즈를 마치며

4편에 걸쳐 400년을 봤다.

인클로저가 공유지를 빼앗았다.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았다. 저항하면 교수대에 올랐다. 그제야 국가가 개입했다. 그 개입은 충분하지 않았다. 분열로 인해 더 느려졌다.

그리고 지금 AI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속도만 다를 뿐 구조는 같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건 우리가 무기력하다는 뜻이 아니다. 패턴을 알면 다음에 뭐가 올지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AI 대체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직군은 어디인가. 그 과정에서 분노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그 분노로 가장 이득을 보는 자는 누구인가. 새로운 구빈법, 즉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누구를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가.

 

이 질문들을 계속 갖고 있는 것. 그게 400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것이다. 🧪

 

[역사는 반복된다 시리즈 완결] 1부 — 땅을 빼앗기면 사람은 범죄자가 된다 (인클로저·블랙 액트) 2부 — 기계를 부수면 교수형이었다 (러다이트 운동) 3부 — 국가는 언제 개입했나 (구빈법·기본소득·데이터 저작권) 3부 추가 — 머스크가 말하는 미래 (Universal High Income) 4부 — 우리는 왜 서로를 향해 싸우나 (분열과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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